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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크리 왕조의 시작
차크리 왕조의 역사는 1782년 처음 차크리 왕조를 세운 라마 1세가 차오프라야 강 서쪽 톤부리에서 버마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왕궁이 있는 라타나코신으로 수도를 옮기면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에메랄드 사원으로도 알려진 왓 프라깨우는 라마 1세 때 지어진 왕실 사원입니다. 왕실을 위한 사원이라 승려들이 거주하지는 않습니다. 궁전에 들어가서 매표소를 지나면 왓 프라가 있습니다. 황금탑, 에메랄드 부처, 벽화 등 200년이 넘은 유물들을 보면, 왓 프라깨우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왓 프라깨오의 남서쪽 사원을 나오면, 왕궁이 있습니다. 야외 정원과 거대한 건물들로 가득한 이곳은 라마 8세 때까지 왕들의 공식적인 거주지였습니다. 현재 태국왕은 두싯 지역에 살고 있습니다. 두싯은 관광의 거리인 카오산과 비교적 가깝기는 하지만, 사실 볼거리가 많이 없다는 점이 아쉬운 부분입니다. 카오산 로드에서 도보로 10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민주화 기념비 주변에는 왓 수탓, 왓 랏차낫다람, 왓 사켓 등 라마 3세에서 5세 때까지 지어진 수많은 사원들이 있습니다. 민주화 기념탑 주변에는 왕궁과 두싯 일대를 가로지르는 도로가 나 있습니다.
근대화의 시작부터 입헌군주제 도입까지
태국의 진정한 근대화는 라마 4세 때에 시작되었습니다. 영화 왕과 나에서 배우 율 브린너가 연기한 실존인물이 바로 라마 4세입니다. 당시 라마 4세는 영국과 보우링 조약을 맺었었는데, 태국과 외국 간의 최초의 조약이자 불평등 조약이었습니다. 조약 비준 당시 태국은 처음으로 시암이라는 국호를 사용했습니다. 그 후 라마 4세 국왕은 미국, 프랑스, 덴마크, 벨기에, 이탈리아, 스웨덴, 노르웨이, 오스트리아, 헝가리 등의 나라들과 우호통상조약을 체결함으로써 서구 문화를 받아들이게 됩니다. 뒤이어 라마 5세 출라롱꼰은 사회와 정치를 현대화시키고, 왕권을 강화하는 데 놀라운 업적을 남겼습니다. 군대, 세금 및 법률 시스템을 안정화시키고, 아이들의 초등 교육을 의무화하기 위해 학교를 설립했습니다. 방콕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에 철도를 놓았으며, 증기선을 도입한 것도 라마 5세입니다. 라마 5세의 형제들은 행정, 사법, 군사 등 다양한 분야의 수장들을 역임하며, 태국의 근대화와 왕권 강화를 이끌었습니다. 1910년에서 1925년까지 통치한 라마 6세 와치라웃 왕은 태국을 연합국의 일원으로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시킵니다. 그 결과 태국은 국제적 위상을 드높일 수 있었으며, 이를 통해 불평등 조약을 타파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게 됩니다. 그 후 1925년에서 1935년까지 태국을 통치한 프라자드히포크 왕은 태국의 재정난을 해결하기 위해 국민평의회를 결성하고, 세계적 경제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총리에게 국정 운영권을 위임하는 정부 개혁안을 발표했습니다. 프라자드히포크왕은 사실 왕이 될 준비가 되지 않았지만, 마음만은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러나 태국에 만연해 있던 여러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인 문제들이 1932년 6월 군사 쿠데타를 통해 발발하게 됩니다. 결국 입헌 군주제가 도입되었고, 라마 7세 국왕은 1935년 3월에 공식적으로 퇴위하게 됩니다. 군부는 라마 7세 국왕의 조카인 아난타 마히돌을 왕위에 올렸습니다. 그 후 1935년에서 1946년까지 태국을 통치한 라마 8세 국왕은 통치 기간 대부분을 스위스에서 공부를 하며 보낸 뒤, 1945년에 고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는 6개월 후인 1946년에 21세의 나이로 사망하게 됩니다.
라마 9세에서 라마 10세까지
라마 8세가 사망한 후 그의 형제가 라마 9세로 19살의 나이에 왕위를 이어받게 됩니다. 라마 9세는 70년 126일 동안 태국을 집권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나라를 오래 통치한 군주로 기록에 남았습니다. 2016년에 사망할 때까지, 라마 9세 국왕은 백성들로부터 많은 존경을 받았습니다. 라마 9세는 집권 초기에 군부를 지켰으나, 1990년대에는 민주화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는 1950년대부터 왕실이 투자한 로열 프로젝트를 통해, 산간벽지 주민들의 삶을 들여다보며 빈곤퇴치, 소득증대, 교육향상에 힘썼습니다. 태국 전역에 라마 9세와 태국 왕비의 사진과 초상화가 걸려있는데, 이는 국민들이 얼마나 라마 9세를 존경했는지를 알 수 있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2016년 10월 13일 라마 9세 국왕이 사망하자, 푸미폰의 외아들 와찌랄롱꼰이 64세의 나이로 왕위에 즉위했습니다. 라마 10세는 200년 차크리 왕조의 역사를 이어가기 위해 금관을 쓰고 공식적으로 왕위에 오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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